남한과 북한은 뿌리는 한민족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북한은 워낙 보안이 철저하고 폐쇄적이다 보니 우리에겐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죠. 이런 폐쇄성 때문에 간혹 탈북민을 만나면 이런저런 궁금증을 던지는데요. 그중 꼭 빠지지 않는 질문이 ‘아오지 탄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곳은 일반적인 석탄을 채굴하는 탄광이 아닌 정치범들을 고문하는 정치 수용소로 악명 높았는데요. 소문만 무성하던 아오지 탄광의 실제 모습은 어떨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YOWOOtrip|최희진 기자

탈출 시도하다 걸리면 죽음
악명 높은 아오지 탄광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일반적으로 반공주의자나 기독교인, 자본가 등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과 그의 가족 3대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 수용하여 강제노동을 시키는 곳을 의미합니다. 아오지 탄광 또한 상당수 정치범들이 혹독한 환경에서 석탄을 캤던 관계로 우리나라에선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죠.

아오지 탄광의 악명은 일제강점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곳에 끌려가 노동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인간적인 노동, 폭행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죠. 특히 일제 시대 허술한 노동 환경에서 갱이 무너지는 사고가 빈발했고 보호 장비 없이 작업을 강행하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혹독한 작업환경에 못 견뎌 만에 하나 수용범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걸리면 죽음보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에서 지면 탄광행
소문의 진위 여부

심지어 북한의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같은 큰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간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정사실처럼 이야기했으나 이는 사실 거짓으로 밝혀졌는데요. K리그에서도 활약했던 조선적 북한대표팀 출신 공격수 ‘인민루니’ 정대세는 2012년 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루머를 해명했습니다. 그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 선수들과 감독들의 지위도 높아졌다”라며 아오지에 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설명했죠.

그러나 한국 선수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경우 실제로 탄광에 끌려갔다는 증언이 나와 충격을 안겼습니다. 전 북한 유도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창수는 북경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에 패한 후 삼진 탄광에 끌려갔다고 전했는데요. 다만 자신이 탄광에서 일한 기간은 단 2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곳인지 한국 와서 알았다’
의아해하는 탈북민 많아

한 번 들어가면 멀쩡히 살아나올 수 없는 북한 안의 지옥으로 알려진 아오지 탄광이지만 이에 대해 설명할 때 정작 탈북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오지 탄광은 1967년 6월 13일에 김일성이 방문하며 명칭이 유월십삼일탄전(6.13탄전)으로 변경되었죠. 이후 ‘사적지’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시설 보수가 이루어져 현재는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에 대한 대우나 복지수준도 나쁘지 않아 북한 사람들 사이에선 서로 들어가려 경쟁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오지 탄광 부근에서 살다가 탈북한 30대 새터민은 “아오지 탄광이 그런 곳이었는지 한국에 와서 처음 알았다”라고 밝혔습니다. 20세기 중반 잠시 정치범 수용소 역할을 했으나 이후에는 직장으로서 인기가 높았다고 회상했죠.

아오지 탄광 아니다,
탈북민이 꼽은 지옥의 장소

사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이 말하는 지옥의 장소는 따로 있습니다. 삼면이 산으로 가로막히고 전 경계가 2~3m의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는 용덕 수용소입니다. 이곳에서는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경비 대원들이 수시로 순찰을 하며 경비견도 딸려있죠. 탈출을 방지하기 위한 트랩도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약 50제곱 미터의 열악한 수감실 안에 30명~40명 사이의 수감자들이 생활하고 있는데요. 당연히 냉난방도 안 돼 겨울에는 영하 20도 아래로 온도가 떨어져 수감자들이 동상에 걸리는 일도 잦습니다. 여기에 각기병과 각종 폐 질환들 또한 수감자들 사이에서 만연하다고 알려졌죠.

실제 범죄자에 대해서는
공개처형도 서슴지 않아

대부분의 정치범들은 자신이 무슨 죄목으로 끌려왔는지도 모른 채 10~20년 넘게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숨지는 일이 빈번합니다. 하물며 실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더욱 잔혹한데요. 북한의 정권 유지 방법 중 하나인 공개처형이 대표적입니다. 범죄자들은 총살이나 교수형 등 정권에 의해 살해되며 시체는 토막 난 채 소각되거나 암매장됩니다. 가족들이 고인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죠. 심지어 처형 시 가족들을 참관하게 하기도 합니다.

2013년부터는 공개처형장에 특별한 도구도 등장했습니다. 휴대용 보안검색기인데요. 참관자들이 처형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휴대전화기, 카메라 등을 탐지해 압수하기 위함이죠.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후에 생긴 변화로, 공개처형 장면이 외부에 공개될 것을 꺼린 데 대한 우려의 조치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