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차 규격
두 번 개정했지만
19년째 변화 없어
여러 차급 중에서 유일하게 크기와 배기량 제한이 존재하는 경차. 실내 공간이 좁고 힘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구매 시 개별소비세가 면제되며 취득세, 자동차세, 유류세, 고속도로 통행료, 공영주차장 요금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이 따라온다. 한국의 경차 규격은 1983년 대한민국 상공부가 에너지 절감 차원의 일환으로 세운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에서 비롯되었는데 현재까지 두 차례 개정이 있었다.
경차 규격 도입 당시 전장/전폭/전고/배기량을 각각 3.5m/1.5m/2.0m/800cc 미만으로 제한했으나 2003년 경차 판매량이 급감하자 20년 만에 규격을 상향했다. 전장은 3.6m, 전폭은 1.6m로 각각 10cm씩 커졌는데 19년이 넘은 현재까지 같은 규격이 유지되고 있다. 비록 배기량 제한은 2008년에 1,000cc 미만으로 완화되었고 현대차그룹에서 1.0L 터보 엔진을 마련함으로써 출력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실내 공간은 경차라는 점을 감안해도 아쉬운 편이다.
한국인 평균 체격
현재 경차는 부족
현재 한국인의 평균 체격은 경차 규격이 개정된 2003년 당시보다 커졌다. 지난 3월 3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20~69세 한국인의 평균 신장은 남성 169.4cm, 여성 156.7cm이었으나 2021년에는 남성 172.5cm, 여성 159.6cm로 증가했다. 신장과 함께 체격도 커지기 마련이니 현재의 경차 공간은 부족할 수 있다. 또한 지금껏 그래왔듯 평균 신장이 지속해서 증가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현행 모닝의 전폭은 2004년 출시된 1세대와 동일하나 시트는 현대인 체격에 맞춰 커졌다. 하지만 차체 전폭을 키우지 않는 이상 실내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뽑아내더라도 양쪽 시트 간격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경차 규격에서 전폭을 10cm 완화해 1.7미터까지 허용한다면 승차 공간 확보는 물론 상품성 측면에서도 유리해진다. 실내 바닥이 평평한 전기차의 경우 아이오닉 5처럼 넉넉한 크기의 슬라이딩 콘솔을 적용할 수도 있는 일이다. 또 한 가지 큰 이점이 함께 따라오는데 이는 경차 시장 활성화와 직결된다.
유럽 A 세그먼트
경차 인정 문제
경차 규격 확대의 필요성은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다만 그 이유가 승차 공간 확보보다는 국내 자동차 제조사의 독과점 방지와 경차 시장 확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뿐이다. 대다수 유럽 국가는 한국과 도로 사정이 비슷해 소형차 시장 규모가 큰 편이다. 유럽 차급 분류에서 가장 작은 A 세그먼트의 기준은 전장 3.5m 이내로 한국 경차 규정과 비슷하나 전폭이나 배기량 등의 제한은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 판매되는 상당수 A 세그먼트 차량은 한국 경차 기준에서 전폭에 걸려 수입되지 못하고 있다.
출시 당시 국내 반응이 뜨거웠던 폭스바겐 UP!의 경우 전장 3,540mm, 전고 1,489mm, 배기량 999cc지만 전폭이 1,641mm로 한국 경차 규격에서 41mm 초과해 결국 한국 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한때 국내에 정식 판매된 바 있는 피아트 500 역시 전장과 전고가 각각 3,550mm/1,555mm로 한국 경차 기준을 충족하며 875cc 배기량 엔진 라인업도 있으나 전폭이 1,640mm라서 경차로 인증받지 못했다. 당시 피아트는 500가 소형차로 분류된 김에 가장 큰 1.4L 엔진이 탑재된 사양을 들여와 판매했다.
개정 요구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규격이 완화됨으로써 경차 선택지가 넓어진다면 좋겠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당장 현행 경차에게도 좁은 경차 전용 주차구역 문제는 둘째 치고 경차가 더 이상 경차가 아니게 된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경차 규격은 각 나라의 도로와 주차 환경, 산업 및 경제 상황 등을 반영해 결정되는데 이를 상품성 개선이나 시장 확대를 위해 무작정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3월 25일 국내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입차 업계에서 한국의 경차 규격이 FTA 기본 호혜·평등 원칙을 위배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FTA는 수입 제품에 대한 관세 혜택을 줄 뿐 국내 규범에 대해서까지 규제를 풀어주지는 않는다”며 “FTA와 국내 경차 규격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경차 기준 확대에 관해 지속적인 제안이 있다면 검토해볼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 표명은 없는 상황이다.